공교육, 그리고 평등. 거기에 대한 교육사회학개념이 생각나서 끄적임. 교육학공부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15640&no=420&weekday=mon

오늘자 사립정글고교의 링크.
그리고 tivu****님이 쓴 덧글 : 공​교​육​이​ ​평​등​을​ ​준​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2010-08-16 02:25:00


이 덧글을 보고 문득 떠올라 글을 쓴다.
*주의 : 이 글은 덧글을 쓴 사람을 비방하고자도, 해당 웹툰을 까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혹 제가 그러한 의도로 글을 쓰게 된 것이 보인다면 가차없는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 생각을 보다 자연스럽게 꺼내기 위해서 평어체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글이 삼천포로 빠지더라도 그냥 이해해주세요. 제가 글을 길게쓰다보면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까먹습니다...대개.. 서두에서 꺼낸 말이랑 안맞더라구요.


그...뭐랄까.

개천에서 용난다는 고사(?)는 우리 사회에 참 많이 써먹는데.... 거기에 대한 사회가 책임져야할 부분이라던지 뭐 어쩐다던지 하는건 저 닭다리우등생이 하는 말로 넘겨버린다 하더라도....

덧글이 말하는 바는 단연 의미심장한 주제를 휙 던져버린다.


공교육이 평등을 준다.(혹은 준다?)


음..... 한번 생각을 해보자. 우리의 과거의 경험, 혹은 현재 진행형의 경험을.
과연 학교교육이 우리에게 평등이라는 것을 주었는가? 아마 대다수가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

...아 이러면 평등이 너무 광범위해지는 걸까? 뭐 간단하게 평등에 대해 생각해보면 좀 명확해질까나?
평등에 대해 한번 떠올려 보자. 평등이라는게 뭘까? 사회적으로 동등하게 된다는거? 아니면 돈이 평등하다는거? 그것도 아니면 학력이 평등해 진다는거?

정답이라는게 있을까보냣. 평등이라는게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되는데.
교육에 붙이면 교육적 평등이요 사회에 붙이면 사회적 평등. 이런 식인데.
그치만 임용재수생에 불과한 나따위는 마음대로 평등의 범위를 좁혀버린다. 당당하게도~ (생각대로 재수! 저 스크씁니다...)

웹툰에서 말하고자 하는 평등부터 부자.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의 유래를 떠올려보자면 단연 신분사회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언제? 당연 조선시대. 이 말은 개천이라는 하급신분....아니 계급이라고 해보자. 하급 계급에서 상급 계급으로 신분이 껑충 뛴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에서 그 수단은 단연 과거제였다.
물론 조선시대에 실제 양민이 과거를 그것도 문과를 급제한다는건 정말로 등용문 통과하는거고, 실제로는 아마 잔반(몰락양반)들에게 해당될테지만, 조선후기사회가 거대문벌과 그에 따르는 계파에 따라서 관직이 좌지우지된 것을 감안하면 잔반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파벌을 뛰어넘어서 잘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수 있다.
여하튼 시스템으로 계급상승의 수단이 있었던 조선시대에는 저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정확히 들어맞는다.

여기서 함정이 하나 발동. 실제 저 말이 자주 쓰인 시대는 조선시대였을까?
당연하게도 그때는 계급이 시스템으로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또 수단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쓰일 곳이 없었다.
그럼 언제 많이 쓰였을까?

어른들이 많이 회상하던 시대. 우리네 아버지들이 항상 들었고, 또 그 실례가 우리 아버지 세대였던 때.
바로 60~70년대다.
어째서 그런걸까?


여기서 하나 교육사회학의 큰 분류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교육사회학은 그 말이 나타나는대로 교육의 사회학이다. 제법 중의적인데 교육에 사회학적 지식을 접목한다는 건지(Educational Sociology)인건지 교육현상이 하나의 사회학적 현상이라는건지(Sociology of Education)인지 불분명한데, 걱정하지 마시라.
요즘 교육사회학은 교육현상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거기에서 가지치기 해 나갔다. 교육적 사회학은 ..... 멸망했다?
애초에 사회과가 있는데다가 응용과학적 성격이 짙어서 이런 거대담론에는 잘 안쓴다. 있다면 신교육사회학정도인데 이것도 교육사회학의 한 지류다. 즉 교육사회학이라는 것은 교육현상을 사회적 유형으로서 분석한다는 건데
여기에서 그 큰 분류가 발생한다.

바로 기능론과 갈등론이다.
기능론(Functional Theory)는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어귀스트 꼼트(A. Comte)에서 출발해 사회유기체론의 확립자인 허버트 스펜서(H. Spencer)-사회진화론의 그 스펜서 맞다.-에 의해 기초가 확립되고 뒤르켐(E. Durkheim)이 발전시켰다.(뒤르켐은 교육사회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사람인데......)
이들이 이런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은 당대 그들이 처한 시대에 대한 불안이었다. 꼼트는 프랑스 혁명, 뒤르켐은 산업혁명에 따른 불안에서 그들의 학문을 출발시켰다.
요약하자면 그들이 각각 처한 사회는 그네들이 생각하기에 매우 역동적이고 불안한 사회였고, 그러한 대안 혹은 이상으로써 그들은 사회가 유기체적으로 이루어져서 서로가 서로를 보안하고 사회의 존속을 최우선으로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혹은 이루어져야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딱딱하네...
좀 편하게 생각하면

"에라이 사회가 왜 이따위야! 이건 자살이라고! 사회라는 건 살아야 장땡인거잖아! 너님들 잘못하고 있는 거야!"

라고 볼 수 있다. 왜곡률은 80%다. 아참 스펜서는.... 좀 혐의가 있다. 사회진화론에서 해먹은 전적이 있어서 좀 곱게는 안보이네.


기능론을 대표하는 큰 이론을 꼽자면 단연 사회유기체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거다.
(여기서 유기체의 움직임은 언제나 직면한 문제상황에 대한 대처다. 세포라던지 이런 생물학을 끌어들이지는 말자.)
기능론에서는 일단 계급은 없다고 전제한다. 계급이라는건 상하의 구분이 뚜렷한 것을 말하는데, 유기체에서 만약 그런 뚜렷한게 있어버린다면...

예 : A=어이~ 돌맹이 온다 왼발 점프하자! B=야 왼발은 오른 발 다음에 나가는 것 뿐이다. 점프따윈 무다무다무다.

결과는? 자빠링이지 뭐.
여튼 그러한 결과로 유기체설에서는 계급을 구분하고 계층을 내세우는데 여기서 계층은 사회라는 유기체가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 기능을 분할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계층들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사회학일텐데 교육에 있어서 뒤르켐은 여기서 화려하게 빛난다.

뒤르켐: 사회화가 출동한다면?
a: 사
b: 회
c: 화

그렇다. 괜히 교육사회학의 아버지가 아니다. 뒤르켐은 사회의 평형상태를 유지하는데 교육이 큰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사회화라는건 말 그대로 Socialization. 먼 옛날옛적 그리스 할배들은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그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사회화가 필요하고, 그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니라~ 라고 뒤르켐이 지꺼....말씀하셨다. 교육이 존재하는 건 사회화를 하기 위해서고, 사회는 아주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계층을 나눈다.
사회라는게 의사만 있다고 존재하는건 아니잖아? 교사도 필요하고 노동자도 필요한 법이지.
그리고 사회화는 이 계층을 한데 묶는 틀이다(보편사회화라고 하지요...)

근데 이 기능론이랑 평등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게 인지상정
교육의 사회화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의 계층화를 설명하기 위해! 교육학과 사회학 그리고 임고생머리에 쥐를 뿌리고 다니는
사회학의 감초 귀염둥이 악당.... 파슨스 아저씨 되시겠다.
톨컷 파슨스아저씨를 두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선발과 사회화 되시겠다. 사회화야 뒤르켐이 말한거대로 사회가치를 내면화하는거다. 근데 파슨스 아저씨는 이상적 성인(成人)의 양성을 교육의 목표로 보는 아저씨라서 저걸 성인이 되었을 때 자질의 내면화라고 말한다.(근데 이상적 성인은 또 어디서 찾냐? 있긴 있냐? 이게 파슨스 아저씨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된다.)
사회선발이라는건 사회라는 유기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골라낼 필요가 있다는건데, 그건 교육을 통해서 걸러지는거라는 말씀 되시겠다. 그리고 그걸 거르는 망이 바로 학교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누군가가 질문하겠다. "야 그럼 교육차별하자는 이야기냐?"
아니다. 파슨스아저씨는 교육기회의 평등을 주어서, 평등한 상황에서 학생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서 계층이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게 내가 톨컷 파슨스를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고. 파슨스가 말하는 학교는 너는 능력좋으니까 의사고 넌 안되니까 공돌이. 이런게 아니라 의학재능이 있는 학생은 의사가 되고 공학적 재능이 있는 학생은 공학도가 되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거다. 그게 그거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전혀 아냐!!!!! 파슨스아저씨는 의사나 공돌이나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본다고!
뭐....그걸 위해서는 기회균등과 학교의 공정성, 평등성이 절대적으로 확보되어야한다는 거지만....그리고 현재 우리의 공교육은 이게 안되고 있는거고.

문제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는 거지만. 아마 정글고 작가도 이런 기능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 거다.

아참. 내가 큰 분류가 두개가 있다고 했다. 기능론은 이쯤 설명하면 다 됬다고 보지만...
기능론의 문제...그러니까 내가 파슨스아저씨가 개인주의적이라는 문제를 말했을 것이다.(아 좀 진정했다.)

이 부분을 치고 들어온게 바로 갈등론이다.
갈등론자들의 말을 잠시 들어보자.

기능론은 사회가 평형상태로 돌아간다고 보는데 그게 첫째로 말이되냐는 소리냐고, 둘째로 너님들 계층이동이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된다는건데 실제론 안그렇잖아? 애초에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왜 나오는걸까? 학교교육이 사실 계급을 형성하는거 아냐?셋째 사회가 레고블럭이냐? 이 기능 저기능이 서로 따로놀게? 진짜 공돌이랑 의사랑 같은거냐? 엉? 엉? 의사아들이 왜 의사가 되는지 설명해봐. 그게 진짜 의사아들에게 의학적 재능이 있어서일까?  마지막으로 파슨스? 너 성취지향성이란걸 사회화에서 내면화하고 학생들이 그걸보고 진학하고 경쟁이 내면화되고 그를 통해서 산업사회가 발전한다고 했는데 그게 부르주아 발전이지 프롤레타리아들한테 돌아오는게 뭔데? 미쿸공돌이 아들딸들이 왜 학교 성적이 안좋은건데? 사실 학교에서 가르치는게 평등하지 않은거 아냐? 프롤레타리아한테 부르주아교육을 가르치면 너라면 성적 잘나오겠냐? 너라면 경쟁하고 싶겠냐?


이런 식으로 기능론에 사정없이 태클을 걸어먹은게 바로 갈등론이다.
갈등론의 시작은 대강 말에서 느낌이 오다시피 마르크스다. .....이 아저씨는 도대체 안끼는데가 없다.
하여튼 마르크스는 잘 알다시피 사회는 투쟁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그러니까 철학이고 교육이고 나발이고(상부구조)간에 돈이나 이익(하부구조)에 따라서 좌지우지 되는거 아냐? 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대단한 점은 이걸 무척 일관성있게 밀어부쳤다는 점이다. 즉 문제점을 짚어내는데는 이만한게 없는 거다. 유럽에서 사회당이나 노동당이 집권하는 이유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말에 홀린게 아니라 이렇게 사회에 강력하게 먹이는 태클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근데 갈등론의 시작은 마르크스지만 실제로 이론으로 주장된건 한참 후의 일이다.

자 그럼 하나 질문. 이런 갈등론이 태동한 곳이 어디일까?
사회주의가 폭넓게 있는 이탈리아? 아니면 공산주의가 확립된 동독? 소련? 것도 아니면 현재 노동당 집권 경력이 있는 영국?

다 땡이다.

미쿸이다. 천조국이다. 자유주의의 대표격 국가에서다.
내가 블로그에 평가에 관련해서 포스팅한게 있는데.... 여튼 거기에서 20세기 중후반에 미국의 학력부진이 심각하다고 말했었다.
미국의 교육사회학자들은 이런 학력부진의 원인이 사회학적 문제라고 파악하고 도대체 그 원인이 어디서 오는지 고심했다.
학교의 교육기회가 평등하지 못했던걸까? 아니면 교사들이 제대로 못한걸까? 것도 아니면 교육과정의 문제일까?

이에 혜성같이 등장한게 보울스와 진티스(Bowels&Gintis)다.(사실은 혜성같이 등장한건 아니고 드디어 주목받았다고 해야겠지)
보울스와 진티스는 그러한 교육부진은 결국 (파슨스로 대표되는)능력주의 교육관이 허구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사립학교의 후원자들이 대개가 기업 즉 부르주아들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그러한 부르주아의 후원을 받는 학교, 더 크게는 사회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부르주아들이 주류로 있는 미국의 공교육의 내용이 정말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공존하는 학생들에게 맞추어 져 있느냐고 묻는다. 실제 학교교육은 부르주아위주로 교과가 짜여있고, 학생들은 자기네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부르주아위주의 사회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냐(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한다.)고 묻는다.

이런 갈등론은 전세계(라고는 해도 자본주의 진영에서 그나마 사회주의적 관점을 학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있는 나라)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교육사회학에서 그 싸움을 시작했다.

여기까지 읽다가 다들 지쳤을 것이다. 그치만 난 그런거 배려안한다. 왜냐면 나도 정신이 혼미해서 내가 무슨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갈때까지 가보는거다.

어 누군가의 질문소리가 들린다.
그럼 갈등론은 평등따윈 엿먹어라고 말하는건가? 그럼 평등을 말하는 거에서 왜 갈등론을 끌어왔냐?

대답을 하자면.... 그 말은 반만 맞다. 갈등론은 이 체제하에서는 평등이란 훡휴 당한 상태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다. 마르크스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단어가 뭘까?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다. 보울스와 진티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정말로 평등이 이루어지려면 다 엎어버려야한다고. 그리고 이게 갈등론의 문제점이었다. 도대체 이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냐고. 심지어 같은 갈등론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나왔다. 문제점만 지적하고 대안은 없다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저항이론이라던지 기타등등이 나왔지만 그건 신교육사회학의 영역에 더 가깝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갈등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가차없는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과연 공교육이 평등을 만들어 주는 것인가?'라는 문제제기가 자리잡고 있다.



아...길었다.
평등을 말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면 왜 아버지 세대에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나왔던 걸까?
기능론과 갈등론에 대해서 맛보기로 알았다면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을 것이다. 계층이동이 되느냐 마느냐.
이는 결국 덧글이 말하는 평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사회적 평등'이라는 것을.( 뭐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포스팅의 목적중 하나가 내 공부를 위한 것이기도 해서리...)

그럼 한가지 의문.
아버지세대때는 공교육을 통한 사회적 평등을 이룰 기반이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자주 쓰일 만큼 실례가 풍부하게 드러났던 것일까?

뭐....
그 시대상을 보자면 보습학원이나 과외의 혜택을 받을 학생이 그렇게 많았을리도 없고 결국 의존할 것은 학교교육밖에 없었던 시대일테니 공교육이 사회평등에 이바지 했다는 말은 어느정도 맞을거다.


근데 내생각을 말하자면....

그럴리가 없잖아.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자주쓰였다는건 뒤집어 말하자면 그런 사례가 있으니 따라가려고 아둥바둥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갈등론이 여기서 적용된다. 결국 공교육이라는 것이 계급이동이라는 허상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결론은 그렇게 아둥바둥해서 계층이동에 성공했냐..... 시대에 따른 상대치로 보면 그렇다...라고 하겠지만 절대치로 보자면 여전히 내가 있는 위치는 거기서 거기다라는 것이다.
다른 점은 그때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 계층은 농사꾼이었지만 지금은 준중형이나 중형차를 몰면서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용이라기엔 애매한 그런 위치. 그때는 다들 농사꾼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근로자라는 점이다. 그건 중소기업사장님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대기업에서 더 많이 수주받기 위해서 애쓰고 건강 상하고....


불사조는 사회가 선발을 하고 싶다면 전적으로 사회가 밀어줘야한다고 말한다. 사실 기능론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말이 맞다. 하지만 불사조는 말한다. 사회가 나에게 해준게 뭐냐고라는 말이 있다고. 이건 갈등론이 보는 바다. (사실 작중에서 불사조는 갈등론적 시점에서 무수히 태클을 거는 캐릭터다.) 교육이 정말로 그들 신분상승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거다.

공교육이 평등을 준다는 말은 이제 그만...이라는 댓글은
바로 이런 점을 보는 걸거다.


사회는 공교육을 통해서 계층이동의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건 맞는 말이다.
동시에 사회는 그를 위해 공교육에서 해주는게 없다. 도리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것도 맞다.

자 그럼....

공교육이 평등을 준다는 말은 이제 그만이라는 말에서....

공교육과 사회적 평등을 준다는 말은 어느게 맞는걸까?


ps. 결국 글이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군요.
ps2. 저도 제가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ps3.교육학 개념에서 틀린 것이 있다면 가차없이 지적해주세요. 그리고 혹여라도 제가 본 글에서 뭔가 생각할 것이 있으시다면 트랙백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4.....근데 이 글은 내가봐도 그냥 주절거리는 것 뿐이지 뭐라고 연관해서 쓸게 없네요....결론은 도그스피킹?
ps5. 음.... 도대체 어디로 보내야하는거지.... 뉴비밸? 역밸? 과밸? ........인문학관련한거니까 과밸로 보내긴 해야겠지만 또 역사와 관련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만화나 댓글에서 끌어온거니까 뉴비밸도 맞는거 같기도 하고.....
음.... 아무래도 기능론과 갈등론에 관련해서 학자들을 추적해온거니 역밸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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